4대에 걸쳐 끝없는 봉사를 한 유진 벨 선교사와 린턴 가문
New
Hot
|
|||||
---|---|---|---|---|---|
기자명
|
|||||
기사입력
|
2020-10-27
|
조회
|
6130
|
||
|
|||||
#1 유진 벨 선교사는 조선이 격동기이던 1895년 남장로교 파송 선교사로 목포와 광주에서 많은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우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로 인해 호남의 첫 선교사로 더 잘 알려진 유진 벨 선교사는 "조선, 이 백성에겐 복음 외엔 희망이 없다"며 모든 것을 바쳐 이 땅에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2 광주 기독병원, 수피아여학교, 숭일학교, 목포정명여학교, 영흥학교를 설립했고 양동교회를 비롯해 호남 일대에 많은 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했습니다. #3 1925년 9월 28일 57세의 나이로 별세했으나, 그의 사위 윌리엄 린턴과 손자 휴 린턴, 증손자 스테판 린턴, 존 린턴으로 이어진 후손들이 4대에 걸쳐 오늘날까지 한국에 대한 사랑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4 그의 딸인 샬롯 벨과 결혼한 윌리엄 린턴이 바로 스테판 린턴 회장의 할아버지가 되는 셈입니다. 윌리엄 린턴은 전주 신흥고 교장으로 섬겼고, 한남대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윌리엄 린턴은 일제시대에 신사 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강제 출국을 당했다가 해방된 뒤 다시 귀국합니다. #5 그의 아들인 휴 린턴은 군산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전라남도의 섬과 벽지를 다니며 교회를 무려 200곳이나 개척합니다. 늘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그를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검정 고무신'이란 친숙한 별명을 붙여 줬습니다. #6 유진 벨 선교사의 선교 100주년인 1995년, 스테판 린턴 회장은 북한의 식량난을 돕기 위해 유진벨재단을 설립합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70차례 이상 북한을 오가며 아픈 동포들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58:7 *출처 : 『이 땅에 묻힌 선교사들이 다 전하지 못한 100년의 이야기』 주대준 지음 |
|||||
이전
|
2020-10-28
|
||||
다음
|
2020-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