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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는 실패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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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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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13: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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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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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6일
사실 그는 실패의 왕
인문학 나눔
“그는 23세에 쌀 가게 경일상회를 열어 장사를 시작했다(중략). 경일상회를 차린 지 2년째인 1939년 일제가 전시체제령을 통해 쌀 배급제를 실시하면서 문을 닫아야 했다(중략). 이후 정주영은 1940년 25세의 나이에 서울 북아현동 고개에 위치한 자동차 수리 공장 아도써비스를 인수했다(중략). 흑자로 돌아섰지만, 어느 날 새벽 직공의 실수로 불이 나 순식간에 갯더미가 됐다(중략). 이후 돈을 빌려 신설동 공터에 무허가 수리 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내린 기업정비령으로 다른 공장에 흡수 합병되고 만다.”
김현중 저(著) 「어떻게 생존하고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미래의 창, 220-22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정주영은 다시 네 번째 실패를 합니다. 트럭을 사서 운수업을 시작했지만 일감을 주던 광산 감독 등과의 불화로 사업이 실패한 겁니다. 해방 후 서울 초동에 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자동차 수리 공장을 세웁니다. 이듬해에 현대토건이라는 건설업을 시작하고, 이후 두 회사를 합병해 현대건설을 세웠습니다. 현대건설은 6.25 전쟁 중에 미군 공사를 독점하며 번창했지만, 휴전을 전후해 미군 공사가 중단되고 정부 발주 공사에서 잇따라 적자를 기록하며 파산의 문턱까지 갔습니다.
현대그룹 정주영 전(前) 회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신화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이렇듯 실패를 거듭했던 실패의 왕이었습니다. ‘현대’기업의 틀을 갖춘 뒤에도 크고 작은 실패는 계속됐습니다. 그가 신화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운으로 돌리며 체념하는 법이 없었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복원력이야말로 정주영의 핵심 경쟁력이었습니다. 기독 메시지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시는 큰 약속 중의 하나가 다시 일으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잠2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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