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Y N TALK]3.1운동 100주년 기념 - 3.1운동의 불꽃을 점회시킨 민족대표 33인, 양전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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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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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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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불꽃을 점화시킨 민족대표 33인, 양전백 목사 3.1운동 100주년 해 기념 #1 3.1운동 100주년 해를 맞았습니다. 3.1운동 불꽃을 점화시킨 민족대표 33인, 독립운동가 양전백 목사를 소개합니다. #2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양반 가문의 후예로 태어난 양전백 선생. 어릴적 증조부 슬하에서 한문을 배우며 15에는 과거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3 1892년 서울 정동교회에서 기독교와 서구문물을 접하고 감명을 받은 청년 양전백선생은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학당을 운영하며 한글과 성경을 가르치게 됩니다. #4 2년간 고향 생활을 마치고 선생은 기독교에 귀의하여 휘트모어 선교사와 함께 선교활동을 하며 평북지역 선천에 거점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 곳에서 선생은 평안도 일대에 교회를 세우고 선교 사업에 매진하게 됩니다. #5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게 된 선생은 큰 충격을 받고, 약소민족의 설움을 느낍니다. #6 이를 계기로 교육을 통한 국력 신장의 중요성을 깨닫고 신성중학교, 보성여학교 등의 설립에 참여합니다. #7 그 무렵, 일제는 문화통치를 앞세워 기독교 지도자들을 초청해 일본시찰을 시키고 회유하는데, 선생을 비롯한 기독교 교인들은 이를 완강히 거절합니다. #8 회유가 실패로 돌아가자, 일제가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 누명을 씌워 민족 지도자들을 잡아들인 일명 105인 사건을 벌이고, 선생 또한 1년 6개월여의 옥고를 치릅니다. #9 출옥 후에는 3.1운동의 불꽃을 점화시킨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 대표로 참여, 독립선언 주도한 후 다시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10 출옥 후 선생은 선천으로 돌아가 목회활동을 이어가며, 동시에 명신학교의 재건과 교회사 편찬에 헌신하다 1933년 1월 17일 64세를 일기로 선천의 자택에서 별세하십니다. #11 장로회신학교를 1회로 졸업하여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 목사이자 교육자였던 양전백 선생은, 일평생 동안 우리민족의 구원과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정부에서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 건국 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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