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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상처를 품은 ‘화해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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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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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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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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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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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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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계 크리스천들의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요즘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기도회를 정기적으로 갖고 있는 교회 들이 많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참 많을 것 같은데요. 앵커: 독일에는 독일 통일 전 분단 시절,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온전히 품고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분단의 경계 위에 세워져 동, 서독 시민들에게 위로를 전했던 베를린의 한 교회를 소개합니다. 김영환 통신원입니다. 동, 서독을 가로막았던 베를린 장벽. 현재는 장벽의 일부만 남긴 채 기념 공원으로 조성되었습니다. 하루 평균 수천 명이 찾아오는 베를린의 유명 관광지입니다. 공원 한 켠에 자리잡은 ‘화해의 교회’, 교회 앞 마당에 설치된 조각품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성경책과 철조망 위로 서로를 얼싸안은 두 사람. 교회의 역사를 표현한 ‘화해’라는 작품입니다. 화해의 교회는 1894년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후였던 아우구스테 빅토리아에 의해 건축됐습니다. 1000여 석 규모의 신고딕 양식의 교회였습니다. 가난한 노동자들을 섬기기 위해 붙여진 이름 ‘화해의 교회’. 나치 시대, 정권 반대에 앞장서면서 탄압을 받기 시작했고, 2차 대전 때는 연합군의 폭격에 교회 건물이 부서졌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의 연합군은 수도였던 베를린을 동, 서독으로 분할하기도 합의했습니다. 이 합의로 결정된 동, 서독의 경계선이 교회를 관통한 것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동, 서독의 성도들은 분단 경계선 위에서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독을 탈출하려는 시민들이 늘어나자, 동독 당국은 1961년 분단의 경계선 위에 베를린 장벽을 세웠습니다. 베를린 장벽을 뛰어 넘어 자유를 찾으려했던 동독 시민들이 총에 맞아 숨지는 일이 발생했고, 더 이상 동, 서독의 성도들은 누구도 화해의 교회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동독의 군인들은 교회를 완전히 파괴했고, 교회의 종탑은 초병을 위한 초소가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1년이 지난, 2000년 11월 9일. 화해의 교회는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작은 규모의 예배당이지만 화해의교회는 분단의 아픔과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매일 정오에 추모예배를 진행합니다. 더불어 희생자 추모공간을 세우고, 각자의 사연도 소개합니다. 베를린 화해의 교회, 토마스 조이트너 담임 목사는 “우리는 함꼐 가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내일의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고 전했습니다. 화해의 교회는 전쟁과 분단 속에서 건물도 성도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생명력은 살아남아 평화의 소중함을 전하는 역사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베를린에서 CTS뉴스 김영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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