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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기획, 기독교의 역사를 찾아서 -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경남지역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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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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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광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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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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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6 |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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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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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CTS 뉴스에서는 3.1운동 백주년을 앞두고 3.1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교회와 지역, 단체들을 재조명해보고 있는데요. 앵커: 오늘은 그 다섯 번째 시간으로 경남지역에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맞선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습니다. 하광희 기잡니다. 한국교회가 남긴 가장 부끄러운 유산인 일제 신사참배. 일제 신사참배에 맞서 끝까지 신앙을 지킨 주기철 목사의 삶은 경남지역 교회들의 자랑입니다. 주기철 목사는 1897년 경남 진해 웅천에서 태어나,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 치하에 놓인 그 해 성탄절, 기독교신앙을 가졌습니다. 청년 주기철의 열심있는 신앙은 나라사랑의 마음으로 이어졌고, 오산학교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지병인 안질로 고향인 진해 웅천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그 곳에서 웅천청년운동단이라는 단체와 민족계몽운동단체인 교남학회를 조직, 청소년들을 상대로 계몽운동을 펼쳤습니다. INT>오성한 목사 / 웅천교회 청년 주기철은 이어 1919년 4월, 웅천지역 만세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웅천 20인 지도부의 일원으로 헌병대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에 참석해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평양신학교를 거쳐 목사안수를 받은 주기철 목사는 양산과 부산 그리고 마산에서 목회를 거듭하며 신사참배 반대 결의를 주도해 나갔습니다. 아울러 마산 문창교회 8대 목사로 부임한 주기철 목사는 교회교육을 통한 교회성장만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벗어나 자주독립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 판단했고, 주일학교 부흥을 위해 마산 도처에 10여개에 가정주일학교를 운영했습니다. INT)김성곤 장로 // 제일문창교회 역사편찬위원장 신앙이 바탕이 된 주기철 목사의 애국정신은 현재 경남지역 곳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처로 삼았던 마산 무학산 십자바위를 비롯해 문창교회 주기철목사기념관과 진해 웅천에 위치한 항일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기념관은 삼일독립운동 100주년을 앞둔 지금, 주 목사의 신앙과 발자취를 되돌아볼 수 있는 장소로 성도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CTS뉴스 하광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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